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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한미관계의 재조명(한국학총서 25) - 김명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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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셔먼호 사건에서 신미양요까지


저자 : 김명호(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464쪽 / 28,000원 / 신국판 양장본

이 책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서 신미양요에 이르는 초기 한미관계를 고찰한 것이다. 도대체 1866년에서 1871년까지 약 6년 사이에, 서해 바다에 세 차례 등장했던 미국 함선들과 조선 사이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는가. 먼저 이 책의 전개과정을 따라 간단하게 정리해보자.

140여 년 전, 미국상선 1척이 평양 대동강에 무단 침입했다가 격침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유명한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사건 직후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한 이른바 병인양요(丙寅洋擾)가 잇달아 일어남으로써 조선은 졸지에 서양 열강과의 분쟁에 휘말려들게 된다. 동아시아의 전통적 사대교린 체제에 안주해온 조선이 서양 열강이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관계의 소용돌이 속으로 돌입하게 된 것이다.
제너럴 셔먼호는 대동강에 침투하여 교역을 강요하는 등 행패를 부리다가 평안감사 박규수가 지휘한 평양 군민들에 의해 배가 격침되고 승선자들은 몰살당한다. 이 사건 후 박규수는 대동강 입구의 마주보는 두 지역(동진과 철도)에 진(鎭)을 설치하게 하였고, 양 진은 그로부터 2년 뒤 다시 찾아온 미 군함 셰난도어호의 대동강 진입을 막는 데 크게 기여한다.
셔먼호 사건 이듬해인 1867년, 다시 미 군함 와츄세트호가 황해도 근해에 나타나 조선 국왕에게 보내는 조회(照會, 외교문서)를 전하고 떠난다. 이때 박규수는 황해감사를 대신해서 그에 대한 답서를 지어두었고, 이것은 셔먼호 사건에 관한 조선정부의 견해를 대변하는 글로 채택되어 미국에 전달된다.

그리고 그 1년 뒤인 1868년 3월에는 미 군함 셰난도어호가 황해도와 평안도 접경해역에 내도하여, 평양에 억류하고 있는 셔먼호 선원들을 데려가겠다고 한다. 물론 셔먼호 선원 생존설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셰난도어호는 근 40일 동안 체류하였고, 그동안 삼화부사 등 조선 관원들과 빈번히 접촉하고 조선 국왕에게 보내는 조회를 포함하여 양측은 많은 문서를 주고받았다. 결국 셰난도어호는 이번에도 조정의 회신을 받지 못한 채 돌아갔다. 대원군 정권이 정부 차원의 공식적 대응을 기피하고 해당 지방관의 임기응변에 맡기는 고식책(姑息策)을 취한 때문이었다. 그들이 돌아간 직후, 충청도 연안에서 대원군 부친(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잘 알려진 독일 상인 ‘오페르트 도굴 사건’이다. 박규수는 이들 일당과 셰난도어호가 연계하여 활동할 가능성을 우려하여 이 사건의 추이에 큰 관심을 쏟았으며, 사건의 전말을 중국에 알리는 외교문서를 기초한다.
그리고 마침내 1871년 신미양요가 발생한다. 미국이 셔먼호 사건을 계기로 자국 선원의 안전과 구조를 보장받기 위한 협상을 요구하려고 다시 대규모 함대를 강화도 근해로 파견했다가, 손돌목에서 피격당한 뒤 광성진 등에 보복공격을 가한 사건이다. 실제로 양국간 교전 기간은 3일에 불과하였으나, 미 함대가 철수할 때까지 한 달여 대치하는 가운데 양측은 빈번하게 서로 교신했다.

이 책은 이렇듯 긴박하게 벌어졌던 중대 사건들의 전개과정을, 당시 양국이 주고받았던 외교문서 등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세밀하게 복원한 연구서이다. 이를 통해 특히 평안감사로 있던 박규수(朴珪壽, 1807~1877)가 조선측의 실질적인 책임자로서 일련의 사건 해결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첨부파일
한미관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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