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비의 책         한국학연구총서

한국근대금융연구 - 정병욱 저


2004년 5월 15일 / 512쪽 / 223*152mm (A5신)
ISBN 8976961234
정가 30,000원

한국 근대화는 독립국의 근대화와 다르게 전개되었으며, 이러한 ‘식민지적 근대’의 성격을 파악하는 것은 일제시기 경제사 연구의 주요 과제이다. 일제시기 경제사와 관련된 여러 주제 중에서 금융, 특히 은행은 그 자체가 근대화의 산물이자 동력이면서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배하기 위해 동원했던 핵심 기구로서 근대성과 식민지성을 동시에 체현하고 있다.
이 책은 1918년에 설립된 “조선식산은행”을 통해 식민지 경제구조와 상황을 살핀 것이다. 식산은행은 1954년 “한국산업은행”으로 전환될 때까지 조선에서 “산업금융”을 담당한 은행이므로, 일제강점기에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된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를 해명하는 데 매우 유용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한국의 금융을 장악하고 식민지적 재편을 꾀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이 ‘보호국’으로 전락하고 ‘화폐정리사업’이 실시되는 1905년부터이다. 금융의 식민지적 재편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졌는데, 하나는 식민지배를 금융면에서 뒷받침하기 위한 ‘특수 금융기구’를 설립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은행조례」를 제정 공포하여 보통은행을 통제하기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보통은행’이란 흔히 알고 있는 예금과 대출 등 일반인 대상업무가 중심인 은행이고, ‘특수은행’이란 특정 목적을 띠고 설립한 은행으로 국가가 직접 보호 감독하는 은행을 말한다. 이러한 특수은행과 보통은행이라는 이원체제의 기본 틀은 ‘한일합방’ 이전에 형성되었고, 그것이 일제지배가 종식되는 1945년까지 유지되었다. 따라서 일제시기 銀行史는 특수은행과 보통은행 사이의 경쟁과 보완이 교차하면서 특수은행의 성장과 보통은행의 상대적 정체의 특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조선식산은행을 분석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① 식산은행은 특수은행으로서 다른 은행에 비해 일제의 경제정책 및 조선경제 전반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으므로 식민지 근대화의 구체적 실태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② 식산은행은 일본 금융시장과 연결되어 자금의 유출입을 매개한 은행으로서 조선경제의 재생산구조가 갖는 식민지성을 파악하기에 유용하기 때문이다. ③ 식산은행은 해방 후에도 산업금융을 담당하는 은행(=한국산업은행)으로 재생되었기에 식민지 경험이 현재 한국사회의 기원과 어떻게 맞닿아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식산은행에 관한 이전의 연구는 1) 자금조달과 운용체계에 관한 것, 2) 자금운용 실태를 조선경제와 연관하여 분석한 것, 3) 조선식산은행원에 관한 것으로 대부분 일제시기에 한정되어있다. 근대금융사 연구 역시 별다른 쟁점 없이 기초를 닦는 작업에 치중되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제와 방법을 제기하며 심화된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심화된 연구작업의 첫 시도라고 볼 수 있는 이 책의 구성과 특징은 다음과 같다.
제1부에서는 농공은행․조선식산은행과 조선총독부, 조선인 자본가의 관계를 통해 국가권력과 자본이라는 문제에 접근하였다. 농공은행에 포섭되었던 조선인 자본가층은 경영주체나 은행자본가로 성장할 수 없었고, 농공은행을 벗어나 다른 은행을 설립해도 조선식산은행과 같은 특수은행의 보통은행업무 겸영에 가로막혀 성장할 수 없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은행자본이 발달하지 못한 주요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제2부에서는 ‘수신(受信)의 사회화’와 ‘여신(與信)의 집중화’라는 분석 틀을 통해 농공은행․조선식산은행의 자금조달과 운용을 시기별로 분석하여 수신과 여신의 근대적 특성이 어떻게 발현되는가, 그 식민지성은 무엇인가를 살펴보았다. 또 <보론>을 붙여 조선식산은행을 포함한 식민지 금융기구 전체의 자금유출입과 그 성격을 다룸으로써 금융 전반의 자금흐름을 조망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근대 금융은 전근대 금융과 달리 은행권․예금통화 같은 신용화폐의 창출, 수신대상의 광범위한 확대, 고도의 여신집중 등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러한 근대적 요소가 식민지 조선에서 발현되는 양상을 규명하는 가운데 식민지적 근대의 내용과 특성도 명확히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제3부에서는 식산은행의 시기별 주요 대출부문을 해당 산업부문의 동향과 관련하여 집중 분석하였다. 여기서는 특히 두 가지 점에 유의했는데, 하나는 대차관계를 통해 해당 산업부문에 형성된 총체적인 개발․수탈구조를 해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인 상인․지주․자본가의 입장에서 조선식산은행의 산업금융이 갖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다. 또 <보론>을 통해 주로 조선인 상인이 이용했던 한일은행의 사례를 자본축적구조 차원에서 분석함으로써 일제시기 금융과 조선인의 관계를 조선식산은행과 비교하여 폭넓게 이해하고자 했다. 한일은행은 1905년 ‘보호국’으로 전락한 후 일본 중심의 ‘화폐․재정정리사업’과 그로 인한 화폐공황에 대처하기 위해 상인이 중심이 되어(=민간 주도의) 설립한 ‘보통은행’으로서, 한국 보통은행의 역사에서 독특한 지위에 있기 때문에 ‘특수은행’인 조선식산은행의 업무나 성격이 잘 대비하여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산업금융에 대한 분석은 식민지적 근대화나 일제시기에 이루어졌다는 경제성장의 향방을 규명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제4부에서는 일제시기 인력성장을 주장하는 ‘맨파워 성장론’의 예로 자주 거론되는 조선식산은행원의 사회적 성격을 파악하였다. 이 인간군의 성격을 조명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문제에 주목했는데, ①일본인이 퇴각하면서 실시했던 ‘융자명령’에 대해 한국인 행원들이 취한 대처방식과, ② 이들이 겪은 식민지 경험에 대한 기억방식과 내용이다. 식민지 경험을 통해 어떠한 성격을 체득했는지를 밝히는 것은 한국 경제성장의 인적 측면을 규명하는 중요한 주제인 것이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이 책은 한국 근대 금융사에 나타난 식민지적 근대화의 성격을 파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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