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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조국, 해방 직후의 민낯(중앙 2024.11.09)

작성자 : 관리자
조회수 : 118

돌아온 조국, 해방 직후의 민낯 (이후남 기자)


‘명월관 도색영화 상영 사건’은 이 책이 전하는 해방 직후 사회상 중에도 단연 흥미를 끄는 대목이다. 도색영화는 요즘 말로 포르노. 때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11월, 사업가를 자처하는 ‘김린이’라는 사람이 명월관에서 기생 4~5명을 거느린 가운데 20여 명과 술판을 벌이다가 도색영화를 틀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엄정한 수사 의지를 밝혔다. 한데 도색영화를 상영한 것으로 전해진 요정들 가운데 명월관 등 두 곳은 벌금과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일주일 뒤 영업을 재개했다. 다른 두 곳은 증거불충분으로 이런 제재조차 받지 않았다.


이 사건이 공분을 일으킨 것은 단지 풍기 문란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 밖에서는 전재민들이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하여 울고 있는 한편에, 불야성을 이루는 모리배의 소굴인 요릿집에서 민족적 양심을 잃어버리고 그러한 추태를 연출한 피고들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이듬해 재판에서 김린이 등 2명에게 벌금과 징역을 구형하며 검찰관이 한 말이다. 



태극기가 걸려 있는 중앙청. 과거 조선총독부 건물로 정부 수립 이후 국회의사당·정부청사 등으로 쓰이다 1995년 철거됐다. [중앙포토]


당시 전재민(戰災民)이나 전재동포는 해방 직후 만주·일본을 비롯해 해외에서 귀환한 사람들과 한국전쟁 이전의 초기 월남민들을 한꺼번에 이르던 말. 책에 따르면 그 규모는 약 250만 명까지도 추정된다. 그 무렵 남한 인구는 1600만 명. 지은이는 당시 일본과 비교해도 남한의 유입 인구 비율과 사회적 충격이 더욱 컸음을 지적하며 “식민지 시대의 극심한 인구 유출이라는 식민 통치의 후유증이 해방 후 급격한 인구 증가라는 변형된 형태로 이어졌음을 의미한다”고 썼다....(중략)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90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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