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250만 귀환자·월남인 등 유입
공동체 틀 못 갖춘 사회적 모순 가득
멀고 살기 위해 사창가 모여든 여성들
식량창고 터는 부랑자·학대 피해 어린이
美군정 오판·실정으로 인한 고난 조명
고국 돌아온 이들 꿈, 냉대 속에 식어
다시 조선으로 - 해방된 조국, 돌아온 자들과 무너진 공동체/이연식/ 역사비평사/ 1만9800원
디아스포라(Diaspora)는 ‘본토를 떠나 타국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집단, 혹은 이주 그 자체’를 뜻한다. 저자는 타국살이를 끝내고 원래의 본토로 돌아가는 자들의 행로와 마음을 응시한다. ‘역 디아스포라(reverse diaspora)’의 드라마다. 그곳에 조국이라는 미명의 공동체가 있었으나, 동시에 그곳은 싸움질만 하는 아수라, 제 욕심만 부리는 아귀, 못된 악업만 쌓는 축생들의 도가니이기도 했다.
해방 직후 약 1600만명이 살던 남한에는, 불과 1~2년 만에 100만명의 일본인이 돌아가고, 250만명의 귀환자와 초기 월남인이 유입됐다. 이것만으로 이미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던 셈이다. 아직 공동체로서의 틀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해방된 조국’은 지독한 사회적 모순만 드러내고 말았다.
고생 끝에 그리던 고국에 돌아왔으나 기대와 달리 해방의 혼란 탓에 몸살을 앓고 있던 남한 사회와 마주하게 된다. 먹고살기 위해 사창가로 모여든 여성들, 주린 배를 채우고자 식량 창고를 터는 사람들, 말투가 달라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어린이들, 노점상을 시작했지만 기존 상인의 텃세와 폭력배의 갈취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 그리고 끝도 없이 밀려드는 유입자들로 인해 집, 쌀, 일자리 등이 줄어들자 이내 싸늘하게 식어버린 기주민(旣住民)들의 따가운 시선이 돌아온다.
책은 일본인의 송환과 유입되는 조선인의 수용 국면에서 미군정의 잘못된 판단과 실정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생했는지를 조명한다. 구 일본인 재산의 섣부른 처리가 각종 편법을 동원한 투기와 사재기를 조장하고, 그 속에서 사욕만 채우려는 사회적 병리현상을 자극하게 된 과정을 소개한다. 이는 부의 편재를 심화한 데 그치지 않고 남한 사회의 체질을 왜곡시켜 장기간에 걸쳐 후유증을 남겼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또한 해방 공간에서 비리의 온상이자 만악의 근원으로 지목된 고급 요정에서 벌어진 사건들도 들여다본다. 특히 조선 제일의 명기들이 가득하다는 고급 요정의 상징인 명월관의 포르노 상영 사건이 몰고 온 엄청난 사회적 후폭풍을 이야기한다. 한사코 구 일본인 소유 가옥의 공익적 활용에 반대하고 요정과 유곽을 집 없는 귀환자, 월남민, 도시 빈민에게 개방하자는 사회적 요구를 애써 외면한 이유는 뭘까. 이미 그 공간들을 차지하고서는 내놓지 않으려는 세력이 있었다는 얘기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지역에서, 이 같은 대규모 인구이동에 따른 변화들은 정도와 맥락의 차이는 있지만 글로벌한 현상이었다.
본문에서 다루지는 않았으나 전후 인구이동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들을 정리한 대목이 눈에 띈다. 남한으로 돌아온 사람들과 달리 해방 후에도 여전히 타지에 ‘남은 자, 남겨진 자, 돌아오지 못한 자의 그림자’를 언급한다. 해방 후 왜 ‘60만 명’이나 되는 ‘재일동포’가 모국 귀환을 단념하게 되었는가, 또 그로부터 10여 년이나 지난 시점에 약 10만명에 달하는 재일동포가 남한에 연고를 두고 있으면서도 북한으로 가게 되었는가(귀국 운동·북송 문제), 그리고 해방 후 최초의 귀국선이 될 수도 있었던 우키시마호가 침몰된 후 제대로 된 진상 조사나 사후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 등을 거론한다. 아울러 미군 점령 지구의 귀환 환경과는 전혀 달랐던 소련 점령 지구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반세기 이상 집단 억류 상태에 있었던 ‘사할린 한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김신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