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주의와 민족적 과대망상을 넘어, 새로운 역사서술을 모색하다
―사이비역사학 비판과 비판 너머의 역사쓰기
『역사비평』은 2016년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비판’이라는 특집을 기획한 바 있었다. 해당 특집은 역사학계 안팎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1970년대 ‘국사교과서 파동’ 이후 2010년대 당시까지 반복되고 있던 한국 고대사 논란의 본질이 이른바 ‘사이비역사학’이 주도한 반지성주의의 문제임을 사회에 환기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잠시 주춤하는 듯 보였던 ‘사이비역사학’의 활동은 2020년대에 들어와 다시 활력을 찾고 있다. 이에 『역사비평』은 민족적 과대망상에 입각해 자국의 고대를 시공간적으로 확장하는 역사인식의 문제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고 있는 사례임을 소개하고, 단순한 비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이비역사학’이 사회적 권력을 획득한 것에 역사학계 차원에서 자성할 부분은 없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자성을 바탕으로 역사를 새롭게 읽고 또 쓸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를 모색해보고자 한다.
기경량은 사이비역사학의 계보와 유형을 정리하는 한편 학문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이들의 시도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역사학계가 경각심을 가지고 이에 대응해야 할 필요성을 환기하였다. 이문영은 1960~90년대 대중 작품에서 확인되는 사이비역사학의 영향을 정리하고 향후의 대응 방안을 제언하였다. 두 글이 현상 분석과 비판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안정준과 임동민은 이러한 현상이 초래된 데 ‘민족사’ 중심의 인식틀을 강조해온 역사학계의 책임 또한 상당 부분 있음을 확인하고 반성적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기존의 한국사 틀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그 한계를 공유하며 새로운 ‘한국사’를 정립하고 서술할 방안을 모색하는 안정준의 담론과, 고대의 ‘경계’에서 태어난 사료인 『일본서기』를 고대의 시선에서 바라보면서 고대 동아시아의 ‘경계’를 허물어보려는 임동민의 제언은, 새로운 역사쓰기라는 지점에서 서로 조응하며 대안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진상규명을 넘어 회복과 화해, 평화를 모색하다
―과거와의 화해: 회복과 평화 만들기
이성용은 크메르 루주 정권 붕괴 이후 캄보디아 지역공동체에서 형성·변화한 가해자-피해자 관계를 분석했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의 내적 자원을 활용하여 자신들의 문화적·사회적 맥락에 맞는 방식으로, 또 그들이 원하는 속도에 맞춰 가해자-피해자 관계 형성을 도모한 점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주윤정은 한국에서 과거사 사건을 과거 일부 피해자들에 대한 사건으로만 인식할 뿐, 이를 사회의 취약집단이나 아동들에 대한 문제, 사회적 정의의 문제로 확장하는 인식과 시각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 아래, 서구 선진국 사례를 중심으로 아동과 소수자 등을 대상으로 한 과거사 청산과 회복의 흐름을 살펴보았다. 현혜경은 제주4·3사건의 1세대 유족 사례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유형의 인권 침해들이 일어났는지 살펴보았다. 끝으로 강혁민은 과거사 문제에서 진실과 정의가 화해를 촉진하기보다 갈등을 유발하고 정치적 양극화를 촉진하는 현실에 맞서, 평화와 민주주의에 조응하는 화해의 정치학을 경합주의의 입장에서 제시하였다. 이는 과거사를 두고 이념적 쟁투가 극심한 한국의 상황에서 화해가 무엇인지 되새겨볼 수 있는 정치적 관점을 제공한다.
현미·채식 위주 ‘바른 먹거리’ 운동의 놀라운(?) 기원
―동아시아 농어업과 사회-생태 물질대사
홍수경은 현미 채식을 위주로 한 음양 및 계절, 체질 이론의 적용을 그 특징으로 하는 마크로비오틱(Macrobiotics)의 이념적 계보를, 그 창시자 사쿠라자와 유키카즈가 중일전쟁 당시 운영한 전시 어린이 여름 건강학교를 통해 비판적으로 분석하였다. 이 건강학교가 전파한 신체-먹거리-환경에 대한 전망은 총력전의 전개라는 당시의 지적, 정치적 토양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난 것이기도 했다. 사쿠라자와와 그의 동료들은 일본 민족의 신체와 건강에 대한 당대의 우생학적 관점에 공감하면서, 그들만의 방식을 통해 ‘지도민족’으로서 일본인의 생명력 강화를 꾀했다. 이는 20세기 초에 등장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 환경주의적 주장의 강점과 함정을 잘 보여준다.
역사 전시의 가능성을 찾아보는 ‘관동대학살 100주년 전시’ 리뷰
―공공역사의 다양한 시선들
정병욱은 작년 관동대학살 100주년을 맞아 국내 곳곳에서 열린 다섯 개의 전시회를 직접 관람하고 이를 공공역사의 측면에서 분석하였다. 그는 다섯 개의 전시회를 크게 ‘박물관·역사관의 전시’와 ‘문화관·갤러리의 전시’로 나누고 각 전시의 특징 및 아쉬웠던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역사 전시가 관람객이 동일시하거나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접점 및 그들이 역사로 들어갈 수 있는 ‘역사의 문’을 만들어야 하며, 특히 관동대학살의 역사에서 일본인만이 아니라 우리 안의 ‘괴물’을 함께 성찰함으로써 역사 부정에 대처하면서도 공존과 평화의 길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했다. 앞으로도 『역사비평』은 공공역사와 관련한 기획 논문들을 계속 연재할 예정이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