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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온 집, 우리가 살아갈 집 - 서윤영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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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온 집, 우리가 살아갈 집 서윤영의 우리건축 이야기

서윤영 지음
무선․신국판 변형(152*205)|본문 276쪽|12,000원
ISBN 978-89-7696-270-6 03610


신석기시대 움집부터 오늘날의 초고층 아파트까지, 우리건축의 이야기

이 책은 신석기시대에 처음 생겨난 우리나라 주거 건축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어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렀는지를 일반인들을 위한 시선으로 설명해주는 건축 교양서이다. 특히 조선시대에 형성된 여러 가지의 독특한 건축 양식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현재의 건축물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부속(문, 창, 퇴, 사랑채, 안채)과 형식(홑집과 겹집, 개량한옥, 아파트), 그리고 상점과 (신)도시, 씨족마을 등을 예로 들면서 건축적 시각으로 세세히 살펴본다. 총 7개의 장에 걸쳐서, 작게는 건축 세부 양식의 변화를 분석하고 사용 용도에 따른 건축물 자체의 분화 과정, 하나의 도시나 마을과 같은 주거 집단의 생성 원인, 한 시대의 사회제도가 그 시대 건축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까지 전반적으로 고찰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답사가 아닌 문헌 연구에 근거를 두고 완성되었다는 점이다. 기존의 전통건축 관련 서적은 답사 기행문 성격의 것들이 대부분으로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 자료에 충실한 반면 현재의 그 상황이 과거에 왜 일어났는지를 문헌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부족했다. 반대로 문헌 연구서의 경우, 전문 연구서나 대학 교재와 같이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딱딱한 성격의 책이 대부분이었다. 북학파 실학자들이 남긴 건축 관련 저술서들(박제가의 북학의, 서유구의 임원경제지)과 그밖의 다양한 논문, 관련 서적을 토대로 하여 우리건축의 전통성(민족문화)과 세계건축(인류문화)의 보편성이라는 두 가지 면에 모두 주목하고 있는 이 책은 일반인뿐 아니라 청소년들이 우리건축의 역사와 현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대중 교양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집, 직주일치(職住一致)의 공간에서 점차 내밀해지고 개인화되어가다

오늘날 주택이라고 하면 오로지 사적 공간으로 이루어진 주거 전용 건물을 뜻한다. 하지만 이렇게 주택이 개인화가 된 것은 불과 200~300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오랜 기간 동안 주택은 주거 공간과 생산 공간이 합쳐진 직주혼합(職住混合) 혹은 직주일치(職住一致)의 공간으로 존재해왔다. 조선시대 주거 건축의 큰 특징을 이루는 사랑채와 안채의 구분은 남녀차별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말해 이것은 하나의 주택 안에 공존했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었고 그것을 담당하는 이가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었던 것이다. 여성이 남성의 영역인 사랑채에 함부로 드나들지 못했듯이 남성 역시 여성이 관장하는 안채에 함부로 출입하지 못했다.
이렇게 외부의 손님을 접대하고 공적 업무를 보는 공간인 사랑채는 조선 후기에 들어와 솔거노비보다 외거노비가 많아지고 임금노동과 같은 사회 서비스가 분화되면서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는데, 구한말에는 본격적으로 기방(妓房)과 요릿집 등의 상업 건물이 생겨나면서 사실상 독립된 건물로서의 ‘사랑채’는 사라지게 된다. 일제시대에 생겨난 최초의 상품주택인 개량 한옥을 보면 사랑채/사랑방 대신 가족 간의 단란행위를 위한 응접실이 등장한 것을 볼 수 있다. 고도 성장기를 맞이한 1970년대에는 주거 건축으로서 아파트가 대중화되었는데 그곳에 처음으로 응접실이 아닌 ‘거실’이 등장했다. 오늘날의 주택은 아파트와 2층 양옥, 개량 한옥 등을 불문하고 모든 공적 공간이 축출된 채 완전한 사적 공간, 주거 전용 공간으로 탈바꿈하기에 이르렀다.

전통 주거는 개량된 형태로 지금 우리의 삶 속에 그대로 살아 있다

현대인들은 아파트에 살면서 이러한 주거 형태가 한옥으로 대변되는 우리나라 전통 주거와 단절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금의 아파트는 조선 후기부터 시작된 한옥의 겹집화, 내향화가 낳은 현대적인 해석이다. 一자형의 초가삼간이 겹집으로 바뀌고 이후 ㄱ자집이나 ㄷ자집으로 변형되었다가 1930년대 가회동 개량 한옥으로 대표되는 ㅁ자집으로 변한 뒤, 현재의 아파트에 그 유형을 심어놓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상품 주택이었던 가회동 개량 한옥은 조선시대의 한옥과 현대의 콘크리트 건축물 사이에서 주거 형식의 맥이 이어지는 데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에 처음 아파트가 도입된 것은 1950~60년대로, 당시의 아파트를 보면 서구에서 직수입된 설계 수법을 채용한 터라 내부 구조가 지금의 아파트와 사뭇 다르다. 서구의 아파트는 실내를 ‘공동/개인’ 혹은 ‘주간/야간’ 등으로 엄격히 구분하기 때문에 현관문을 중심으로 좌우의 공간이 양분되는 게 특징이다. 하지만 1970년대에 이르러 우리나라에서 아파트가 일반화되면서부터 설계 수법도 바뀌기 시작했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거실로 연결되고 침실, 주방, 화장실로 이어지는 한국식 아파트가 나타났다. 이는 대문을 열면 문간을 거쳐 안마당으로 연결되고 마당에서 부엌과 대청, 건넌방 등으로 갈 수 있는 개량 한옥의 동선이 아파트에서도 재현되었다는 증거이다. 아파트는 서구에서 수입된 현대 주거 양식이지만 그 내부를 구성하는 동선 연결 형식은 전통 주거의 정체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아파트 평면도에서 나오는 2bay니 3bay니 하는 것은 한옥의 두 칸 겹집이나 세 칸 겹집의 공간 구조와 흡사하게 닮았다. 100평 이상의 대형 아파트라 할지라도 네 칸 겹집, 다섯 칸 겹집의 현대적 재해석일 뿐이다. 전통 주거는 박제가 되어 민속촌과 한옥마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개량된 모습으로 지금 우리의 삶 속에 그대로 살아 있다.

이 책의 주요 내용

제1장 『육중한 대문 안에 아자살 용자살 창호를 달아』 : 문과 창의 구별이 없이 하나의 구멍이 그 역할을 수행하던 움집은 거적이 유일한 가리개 역할을 했다. 삼국시대로 들어와 건축재료가 흙과 나무로 바뀌면서 나무판자로 된 판문, 나무살을 촘촘히 박은 살창이 등장한다. 전통건축의 미의식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창호지문은 고려시대부터 등장하여 조선시대에는 서민층까지 널리 보급되었는데 출입과 채광, 통풍의 기능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제2장 『커지는 사랑채, 작아지는 안채』 : 주거 공간과 생산 공간이 합쳐진 직주혼합 공간인 전통건축 중에서도 ‘사랑채’는 주목할 만한 요소이다. 조선 초기에는 살림채 한구석에 딸린 방(‘사랑방’)에 불과했던 그 공간이 조선 중기 이후부터 독립된 별채로 등장했고 후기에 와서는 생산 공간인 안채보다 더욱 크고 넓어졌다. 부농계급이 성장한 조선 후기에는 부를 과시하기 위한 경쟁이 일어나 사대부 주택의 특징이던 사랑채 건축이 도처에 난립하고 안채에도 별도의 안사랑채가 세워지기에 이른다.

제3장 『홑집에서 겹집으로』 : 一자형의 초가삼간 형태를 홑집이라 하고 기후적인 요인으로 인해 주로 중부와 남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ㅁ자형의 집을 겹집이라 하는데 고구려시대부터 생겨난 주거 건축이며 강원도와 함경도에 주로 세워졌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와 서울의 북촌 등지에 빈번히 지어졌던 개량 한옥이나 오늘날 아파트의 동선 구조에서 ㅁ자형 겹집과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제4장 『가가 허느쇼오, 가가 도로 지이쇼오』 : 조선 후기에 들어와 급격하게 일어난 사회경제적 변화가 주택 양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화폐유통과 전국적인 물류 유통망이 완비되었고 임금노동이라는 새로운 노동 형태 속에서 한강변 포구들이 상업 중심지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객주와 여각, 가가(假家) 등의 새로운 상업 건물이 출현하게 된다.

제5장 『한양은 지는 해요, 화성은 뜨는 해라』 : 18세기 한양의 급격한 인구 유입으로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자 정조는 인구 분산을 위해 새로운 주거 지역을 구상한다. 정조의 명으로 세워진 화성은 우리나라 최초로 계획된 자급자족 상업도시였다. 그 이전까지 조선에서는 정치적 유교질서나 철학적 사유에 의해 구현되어온 행정도시만이 존재했다. 엄밀히 말해 ‘도시’가 아닌 ‘도성’이나 ‘도읍’일 뿐이었으나, 화성은 최초의 상업도시이자 계획도시였고 또한 최초의 수도권 주변의 신도시였다.

제6장 『상것들과는 함부로 어울릴 수 없으니』 : 씨족마을은 흔히 우리나라의 유구한 전통으로 알려져 있으나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 2백 년 사이에 창설된 것들로서, 조선 후기에 들어와 흔들리는 신분제와 심화되는 양반 사회 내부에서의 갈등, 그로 인해 위협받는 경제적 기반 등으로 크게 위기의식을 느낀 양반들이 은신처로 숨어들어 그들만의 소왕국을 건설한 것이 성립 이유이다. 오늘날에도 대단지 아파트의 내부 구성이나, 고급 아파트 단지, 비슷한 사회 계층이 모여 사는 전원주택 등에서 조선시대의 씨족마을과 유사한 면모를 찾을 수 있다.

제7장 『피지 못한 꽃, 지어지지 못한 집』 : 볏짚을 이용한 초가지붕과 흙벽, 자연석 온돌 등은 현대인들에게 전통건축의 자연친화적 면모를 상징하는 것들이지만 조선 후기 당시에는 경제적 낭비가 심하고 산림의 남벌, 화재 위험, 수해 위험 등으로 인해 불편하고 문제점이 많은 주거 건축으로 여겨졌다. 실학자들은 벽돌을 구워 벽을 쌓고 기와로 지붕을 잇고 중국식 이중 온돌인 복요로 온돌제도 자체를 바꿀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실학자들의 중상주의 정책과 맞물려 건축자재의 규격화, 상품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지은이_서윤영
1968년 서울 수유리에서 태어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수학과 일본어를 공부했고, 명지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1999년부터 4년간 건축설계사무소에서 근무했으며, 인터넷신문에 건축 관련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2003년 회사를 그만두고『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궁리, 2003),『집우집주』(궁리, 2005),『사람을 닮은 집, 세상을 담은 집』(서해문집, 2005) 등의 책을 썼다. 2007년 현재 고려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박사과정 공부를, 홍익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첨부파일
집.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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