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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를 다시 읽는다 1,2 - 한국 근대인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하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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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를다시읽는다1・2

— 한국근대인식의새로운패러다임을위하여


윤해동・천정환・허수・황병주・이용기・윤대석엮음

신국판|1권・592쪽| 2권・660쪽| 각권 25,000원

ISBN 1권 : 89-7696-523-X 2권 : 89-7696-524-8 세트 : 89-7696-525-6


║‘보도자료’의 차례║

1. 이 책의 과제 - 『해방전후사의 인식 대『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이라는 낡은 진영 대립을 넘어서기 위하여

2. 낡은 대립을 지양하는 이유

3. 이책 『근대를 다시 읽는다 의 전체 구성

4. 1권(1・2・3부)과 2권(4・5・6부)의 내용과 주장 ' 낡은 근대, 젊은 비판'

5. 근대의 분과학문을 넘어, 새로운 인문학을 꿈꾸며



1. 이 책의 과제 - 『해방전후사의 인식 대『해방전후사의 재인식 이라는

낡은 진영 대립을 넘어서기 위하여


2006년 2월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이 나오자마자, 이 책은 예상을 넘는 큰 관심을 끌고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그와 함께 이 책의 논리와 사회적인 영향력에 대해 많은 이들의 우려가 쏟아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재인식 의 공과와 사회적 ‘관심’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나 대안은 나오지 않았다. 반면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하 『인식』)은 1979년의 제1권을 시작으로 1989년의 제6권이 마지막으로 출간되었다. 이는 저 암울하고도 위대한 ‘80년대’라는 시대가 곧 『인식 의 자궁이자 터전이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제 『인식』의 세계해석과 역사인식은 현실에 대한 설명력을 다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재인식』의 영향력은 반사이익과 같은 것이고, 그것이 갖는 힘은 『인식 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진보학계’가 스스로 초래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인식  제6권이 나온 지로부터 17년, 생각해보면 그 사이의 변화는 마침내 『인식』류의 민족주의나 민중주의의 관점을 ‘낡은 것(Out of date)’으로 만들어버렸다. 결국 우리는 현실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역사학의 ‘서술’과 ‘지체’에 대해 다시 깊이 고민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오늘날 『재인식』이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명백히 부정적이고 ‘파괴적’이다. 물론 『재인식』에 수록된 논문들 가운데에는 애초의 기대에 부응하는, 그리고 새로 열리고 있는 한국사 인식의 지평을 보여주는 좋은 글이 여러 편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리고 결과적으로 『재인식』은 한국 학계와 사회를 냉전적인 진영 논리로 채색하고 말았다. 이는 단지 보수와 기득권 세력이 『재인식』을 부당하게 전유하거나 고의로 ‘오독’해서만이 아니다.

『재인식』은 스스로 김대중 정권 이후에 의식화・행동화한 이른바 ‘보수우익’의 정치적 이해에 복무하면서 시대착오적인 좌우 대립에 편승하고자 하는 욕망을 숨기지 않았다. 이 책이 소위 ‘뉴라이트’의 역사 교과서인 양 읽히고 있다는 것은 이런 사실을 잘 보여준다. 물론 우리의 실망은 『재인식』이 가진 ‘정치성’과 그 퇴행성에만 있지는 않다. 『재인식』의 그런 퇴행성에는 논리적 빈곤과 역사 해석의 한계가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따라서 『재인식』은 『인식』의 문제를 조금도 극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인식』을 다시 정당화하는 기능까지 하고 있다.

우리가 굳이 이 책 『근대를 다시 읽는다 - 한국 근대 인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하여』를 역사비평사와 함께 엮기로 한 것은, 역사인식에 대한 정치적 논란과 그에 상응하는 논리적 빈곤이 우리 학계에서 움트고 있는 새롭고도 다양한 흐름마저 모두 묻어버릴 위험을 걱정해서이다. 『재인식』이 야기한 혐오감 때문에 그 책에 수록된 몇몇 좋은 논문이 이미 그런 피해를 보았듯이,『인식』을 정당하게 극복해야 하는 우리의 과제 전체가 정치적 논란 속에 무화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과제는 개발지상주의와 국가주의로 요약되는 근대주의와, 제국주의의 쌍생아로서의 민족주의, 이 양자를 모두 넘어서 역사를 새롭게 인식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은 곧 오늘날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새로운 시간의 지평에서 다시 한국과 ‘민족’의 ‘역사’를 다시 바라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 지평을 다시 『인식』의 시간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2. 낡은 대립을 지양하는 이유


『인식』과 『재인식』은 전혀 상반되는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기실 양자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다. 이를 1)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의 문제, 2) 근대와 탈근대의 문제, 3) 역사적 실증주의의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다. 뒤엉켜 있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별하여 정치적으로 윤색된 대립을 지양하는 것은 우리 학계 공동의 과제일 것이며, 이 점이 바로 우리가 이 책을 묶기로 한 이유이다.

우선 『인식』과 『재인식』의 대립 중에서 허구적이라 느끼는 것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애국주의)의 문제이다. 『재인식』은 『인식』의 민족지상주의에 맞서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건전한 애국주의’를 함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애초에 민족주의와 애국주의가 명확하게 분리될 수 있는지부터 의문이지만, 『재인식』의 논리적 기저에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그리고 무척 낡은 사고방식, 즉 ‘(근대)국가는 문명의 상징’이고, ‘민족은 전근대적 야만의 상징’이라는 이분법이 깔려 있다.

더욱 곤혹스럽고 황당한 것은 이 논리가 ‘대한민국=문명,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야만’이라는 사고를 정치적 배후이자 ‘의도’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재인식 의 논리는 민족주의를 지양・극복하기는커녕 새로운 우익적 ‘대한민국 국가주의’를 강화할 뿐이다. 이 애국주의가 ‘건전’하거나 ‘열린’ 성질의 것이라는 가능성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의 형국은 변형된 국가주의가 통일을 절대시하며 북한체제를 무조건 긍정해온 구래의 민족주의와 대치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꼴이다. 그러나 이는 무의미한 거짓 대립이다.

또한 『인식』과 『재인식』 사이의 대립선은 ‘근대’와 ‘탈근대’를 두고 그어져 있다. 『재인식』에는 탈민족주의적이고 탈근대주의적인 지향을 담은 글이 여러 편 수록되어 있어, 언뜻 보면 『재인식』 전체가 탈근대론을 지향하고 있는 것 같은 착시현상을 일으킬 정도이다. 이것이 『재인식』을 『인식』과 달리 보이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보면  재인식 의 논리는 변종 근대주의에 불과하다. 이는 『재인식』이 논리적으로도 전혀 『인식』을 극복하지 못했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여기에도 ‘대립’은 없다.

『인식』이 근거하고 있는 민족주의와 구 마르크스주의가 왜 근대주의의 일부인지는 여기서 구구히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만 우리는 근대 초기의 국가 상실과 식민지 경험, 그리고 내전, 이어진 ‘대한민국’의 정치적 기형성을 경험하면서, 얼마나 절실하게 그런 이념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고 있다. 또한 그 논리가 강력한 탈근대론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것도 잘 안다. 그러나 그것이 끝내 현실에서는 ‘국가주의’로 전화되거나 ‘개발지상주의’의 주박에서 벗어나지 못했음도 잘 알고 있다.

『재인식』의 『인식』에 대한 반정립은 이런 ‘틈새’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탈근대론으로서의 『재인식』의 기획은 실패했다. 특히 『재인식』의 편자가 운운하는 ‘문명론’은 근대주의를 극복하기는커녕 거기서 한 발도 못 나아간, 또는 그보다 훨씬 저열한 변종에 불과하다. ‘문명’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떠한 역사적 정황에서 어떻게 정초된 개념인지를 조금만 생각해보면, ‘문명’으로 역사를 설명하는 것이 왜 완전히 낡은 일인지 잘 알 수 있다. 문명론이 서구중심주의와 국가주의를 벗어났던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인식』과 『재인식』 양자는 매우 중요한 공통점을 하나 갖고 있다. 그것은 실증으로써 ‘역사적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실증주의이다. 실증주의는 역사인식의 근대주의 그 자체이다. 『재인식』 또한 발간의 가장 중요한 취지를  인식 이 저지른 ‘사실의 오류’를 교정하는 데서 구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재인식』이 새로 발견한 그 사실들이 이 시점에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시야 전체를 바꾸어야 할 만큼 크고도 중요한 것일까?『재인식』의 일부 필자들은 마치 새로운 고생대 생물의 화석이라도 찾아낸 듯 이를 과장하고 있다.

역사란 하나의 해석체계이며 사가에 의해 ‘서술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명제는 두루 잘 알려진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학계에는 근대적 실증주의와 이에 근거한 ‘역사’가 여전히 신화로 남아 있다. 적어도 이 대목에서는 『인식』과 『재인식』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근대의 사고체계와 학문사상인 실증주의를 넘어서야만 새로운 역사인식의 길이 열릴 것이다.



3. 이책 『근대를 다시 읽는다』의 전체 구성


『근대를 다시 읽는다』는 1, 2권, 모두 6부, 28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1권에는 한국의 식민경험 및 국민형성과 관련한 논문을 모았고, 2권에는 문화 연구, 담론 비판, 하위주체 연구와 관련한 방법론적 문제의식이 두드러진 논문을 수록했다. 20세기 한국의 근대를 보는 새로운 시선을 ‘식민지 근대’, ‘대일협력’, ‘국민국가의 형성과 균열’이라는 세 가지 문제의식으로 나누어 보았다(1권). 그리고 ‘문화연구’, ‘근대 담론 비판’, ‘하위주체와 기억의 재현’이라는 방법적 시도를 행한 글들도 아울러 수록했다(2권).

이 책은 1990년대 이후에 누적된 학계의 다양한 성과를 반영한 것이다. 물론 최근 학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노력들 모두가 이 책에 담긴 것은 아니며, 이 글들이 ‘대표’도 아니다. 다만 가급적 2000년 이후에 쓰인 젊고 적극적인 인문학 사회과학 연구자들의 글 가운데서 신선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낡고 오래된 가치와 학문적 방법을 과감히 넘어서고자 한 글들을 찾아 싣고자 노력했다.

대부분은 이미 발표된 논문이지만, 수록된 논문 가운데는 새로 쓴 논문도 있다. 각 논문의 전공별 구성도 역사학, 문학이 합쳐 20여 편으로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하지만, 나머지 10여 편의 논문은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인류학, 종교학, 교육학 등 다방면에 걸쳐 있다. 각 부별 논문의 구성과 출전은 다음과 같다.


 1권 


1부 식민지근대라는 문제의식 : 모든 근대는 식민지근대이다

1) 윤해동, 「식민지 인식의 회색지대」, 『식민지의 회색지대』, 역사비평사, 2003.

2) 장석만, 「한국 의례담론의 형성 : 유교 허례의식의 비판과 근대성」, 『종교문화비평』, 제1호, 2002.

3) 오성철, 「조회의 내력 : 학교규율과 내셔널리즘」(신고)

4) 이타가키 류타, 「지식인의 우울」,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휴머니스트, 2004.


2부 ‘친일’의 논리 : ‘협력’은 사상이다

1) 윤대석, 「식민지 국민문학론」, 『식민지 국민문학론』, 역락, 2006.

2) 권명아, 「여자 스파이단의 신화와 좋은 일본인 되기」, 『동방학지』 130권, 2005.

3) 이승엽, 「조선인 내선일체론자의 전향과 동화의 논리-녹기연맹의 조선인 이데올로그 현영섭을 중심으로」, 『二十世紀硏究』 2, 京都大學, 2001.

4) 홍종욱, 「해방을 전후한 주체 형성의 기도 『 좌파 지식인의 ‘전향’을 중심으로」(신고)


3부 ‘대한민국’과 국민만들기 : 태초에 전쟁이 있었다

1) 임종명, 「여순반란 재현을 통한 대한민국의 형상화」, 『역사비평』 64, 2003.

2) 김영미, 「해방직후 정회를 통해 본 도시 기층사회의 변화」, 『역사와 현실  35, 2000.

3) 강인철, 「한국전쟁과 사회의식 및 문화의 변화」, 『한국전쟁과 사회구조의 변화』, 백산서당, 1999.

4) 이임하, 「한국전쟁이 여성 생활에 미친 영향」, 『역사연구』 8, 2000.

5) 황병주, 「박정희체제의 지배담론과 대중」, 『대중독재』, 책세상, 2004.

6) 김보현, 「박정희 정권기 저항 엘리트의 이중성과 역설」, 『사회과학연구』,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2005.


 2권 


4부 근대성과 새로운 문화 :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1) 천정환, 「1920-30년대의 책읽기와 문화의 변화」, 『근대의 책읽기』, 푸른역사, 2003.

2) 권보드래, 「1920년대 초반의 사회와 연애」, 『연애의 시대』, 현실문화연구, 2003.

3) 유선영, 「초기영화의 문화적 수용과 관객성」, 『언론과 사회』 2004년 2월.

4) 한기형, 「문화정치기 검열체제와 식민지 미디어」, 『대동문화연구』, 2005년 9월.


5부 근대인식과 담론분석 : 언어는 권력이다

1) 차승기, 「동양적 세계와 '조선'의 시간」, The Review of Korean Studies, Vol.8, no.2, 2005.

2) 이기훈, 「청년의 시대 - 1920년대 민족주의 청년담론 연구」, 서울대 박사학위논문 중, 2006.

3) 김현주, 「논쟁의 정치와 민족개조론의 글쓰기」, 『역사와 현실』 57, 2005.

4) 허수, 「1920년 전후 이돈화의 현실인식과 근대철학 수용」, 『역사문제연구』 9, 2002.

5) 류시현, 「일제하 최남선의 불교 인식과 조선불교의 탐구」, 『역사문제연구』 14, 2005.


6부 ‘민중’의 경험과 기억 : 하위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

1) 양현아, 「증언과 역사쓰기」, 『사회와 역사』60, 2001.

2) 김성례, 「근대성과 폭력」, 『제주 4⦁3연구』, 역사비평사, 1999.

3) 이용기, 「마을에서의 한국 전쟁 경험과 그 기억」, 『역사문제연구』 6, 2001.

4) 김원, 「1970년대 ‘여공’과 민주노조운동」, 『한국정치학회보』 38-5, 2004.

5) 김준, 「1970년대 여성노동자의 일상생활과 의식」, 『역사연구』 10, 2002.



4. 1권(1・2・3부)과 2권(4・5・6부)의 내용과 주장 - 낡은 근대, 젊은 비판


우리는 저 ‘낡은 근대’에 대한 다양한 ‘젊은 비판’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믿고 있다. 현재의 지적 지형에 대한 단순한 불만이나 위기의식을 넘어서, 그리고 낡은 진영 대립을 넘어서 적극적이고 대안적인 지향을 내보이고자 이 책을 꾸렸다.


 1권  식민지 경험과 국민국가 형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


20세기 한국의 근대는 크게 보면 식민지 경험과 국민국가(및 국민)의 형성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식민지 경험을 해석하는 새로운 시선으로서 ‘식민지 근대’라는 개념과 일제에 대한 ‘협력’을 재해석하는 것을 제출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식민지 경험과 해방 후 국민국가 형성과정이 어떻게 연동되어 있으며, 그 특수성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했다.


1부, 식민지근대라는 문제의식 - 모든 근대는 식민지근대이다


식민지는 근대 세계체제의 가장 중요한 축이었으며, ‘근대’의 고유하고 중요한 현상의 일부였다. 서구와 식민지는 동시적으로 발현한 근대성의 다양한 ‘굴절’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며, ‘서구=보편’이나 ‘식민지=특수’라는 도식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근대는 특정한 지정학(서구)에만 결부시킬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그리하여 처음부터 모든 근대는 당연히 ‘식민지 근대’이다. 이는 사회진화론이나 문명론의 발전단계론에 따라 식민지를 서구 근대의 하위 단계에 위치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가 해방의 측면과 억압의 측면을 동시에 갖는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식민지 역시 수탈과 억압 그리고 문명화와 개발의 이중성을 갖는다. 그런 점에서 ‘식민지 근대’는 근대의 양가성과 식민지의 양가성을 동시에 설명하기 위한 문제틀이다. 또한 ‘식민지 근대’는 제국과 식민지를 관통하는 공시성, 그리고 식민지와 후기 식민지(신식민지)를 연결시키는 통시성을 아울러 지니고 있다.


2부, ‘친일’의 논리 - ‘협력’은 사상이다


‘식민지 근대’에 대한 이 같은 문제의식은 ‘친일’이라는 개념을 ‘협력’ 담론에 대한 비판으로 바꿔 읽을 것을 제기한다. 무릇 모든 지배에 저항과 협력이 수반되었듯이, 식민지 지배도 예외는 아니었다. 식민국가의 억압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권력 장치는 식민지인의 반발과 저항을 초래하는 한편, 부분적인 동의를 통해 식민지인의 협력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식민지 권력은 근대적 국가 장치를 이용해 식민지인을 협력의 주체로 구성하는 세밀한 메커니즘을 동원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식민지민은 ‘민족’을 단위로 저항하거나 협력한 것이 아니라, 저항과 협력의 축을 계급・성・인종・문화・언어 등 다양한 축으로 확장했다. 개인에 따라서 혹은 그(녀)가 소속된 집단에 따라서 저항과 협력의 축은 달라졌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라면 친일을 더 이상 ‘민족정기의 타락’, ‘민족에 대한 배신’ 등과 같은 국민윤리적인 관점에서만 읽을 수는 없다. ‘협력’은 해방 전후 한국 근대사상의 일면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결절점의 역할을 차지하기도 하다.


3부, ‘대한민국’과 국민만들기 - 태초에 전쟁이 있었다


해방 후의 국민국가 및 국민의 형성과정이 자연스러운 것이 될 수는 없었다. 세계적으로 식민지화 때문에 국가 형성이 좌절된 역사 경험을 가진 지역과 민족의 경우, 국민국가는 무조건적으로 성취해야 하는 정언명령이 된다. 남북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해방 후의 역사를 건국과 발전의 영광으로 보든 ‘통일민족국가’ 건설의 좌절과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의 과정으로 간주하든, 국민국가를 절대지상명제로 상정한 역사학은 일종의 목적론처럼 기술된다. 그러나 절대화된 국민국가를 상대화하여 그 형성과정을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근대화 과정을 ‘외부’에서 바라보게 한다. 그럼으로써 국가의 형성이 야기한 새로운 사회적 적대와 갈등이 어떻게 ‘상상적으로’ 해소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한편 국민국가 형성은 곧 국민 만들기였고, 그 과정은 근대화라는 더 넓은 맥락의 정치적 집중의 결과였다. 그러나 국민적 통합을 이루어내는 일은 매우 힘들고 장기적인 과정일 수밖에 없다. 한국전쟁은 국민 형성 전쟁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전쟁 전후에 본격적으로 국민 형성과정이 진행되었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는 대중을 국민화하는 데에 더욱 효과적이었던 바, 이는 대중들의 동의의 수준을 높이고 규율화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형성된 국민국가는 사회적 적대와 갈등의 통합체이거나 그러한 통합을 지향하는 것으로만 이해될 수 없으며, 오히려 적대와 갈등의 현장 그 자체인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2권  탈근대 역사학은 가능한가


탈근대 역사학은 이른바 ‘문화적 전환’과 ‘언어학적 전환’이라는 두 가지 전환에 의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문화연구와 담론 비판은 이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문화연구와 담론 비판은 기본적으로 ‘아래로부터의 역사학’ 곧 하위주체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역사를 모색하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근대 역사학의 ‘실증’과 대립하는 ‘기억’이라는 대상을 환기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4부, 근대성과 새로운 문화 -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식민지기 문화사 연구를 이끄는 새로운 흐름은 대중문화・풍속・일상・문화제도・표상체계・수용자・젠더 등에 대한 논의를 자신의 과제로 삼는 것이다. 한국문학의 근대성을 다시 해명하려는 문학연구에 의해 촉발된 이 연구는 전통적인 의미의 ‘문학연구’와 의식적으로 절연하고, 문화사나 문화연구(cultural studies)의 방법론적 태도를 수용한 다분히 학제적인 연구들이다. 이 연구는 원래의 출발점을 초월하여 식민지 시대와 근대성에 대한 다른 각도에서의 조망을 가능하게 했다. 서구에서 문화연구는 기본적으로 후기 산업사회에서 변화하고 있는 계급투쟁의 양상에 대한 관심에서 탄생하여, 노동자계급과 여성・청소년 등의 하위주체와 그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탐구로 젠더 연구와 포스트콜로니얼리즘에도 영향을 주었다. 한국의 문화연구 역시 기존의 비판적 연구를 갱신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나아가 이런 ‘문화적 전환’의 효과는 새로운 역사학뿐 아니라 새로운 인문학을 위한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 본다.


5부, 근대인식과 담론분석 - 언어는 권력이다


다음으로 역사학에서 ‘언어학적 전환’과 관련되어 있는 담론 비판에 관한 것이다. 역사학의 ‘언어학적 전환’이란, 역사는 객관적인 사실을 복원하는 것이라는 근대 역사학의 기본적인 방법론을 넘어서, 서사와 담론 자체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언어학적 전환’은 텍스트를 통해 객관성과 과학성을 구현할 수 있다는 근대 역사학의 기본 전제를 넘어서고자 한다는 점에서 탈근대 역사학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언어학적 전환’을 단순히 ‘텍스트의 외부에는 아무 것도 없다’라는 방식으로 수용함으로써 역사학의 존재조건 자체를 위협하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다. 담론 비판 역시 ‘언어학적 전환’을 훌륭하게 드러내는 방법론 중의 하나일 것이다.

담론이란 언어로 매개되는 진리의 형성과정을 가리키는 개념으로서, 진리를 직접 파악하는 직관과 대립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담론 이해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담론을 구성하는 일련의 규칙을 분석하여 그 배후에 작용하는 권력관계를 밝히려는 시도로 나타났다. 이런 시도는 근대의 주체 및 의식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주체・의식에 의해 역사서술에서 억압되고 배제되는 부분을 해명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이런 문제의식 위에서 담론 분석이라는 새로운 기법이 발달한 것이다. 담론 분석은 담론과정을 중시하는 연구와, 담론의 지표성(indexicality)을 중시하는 연구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것이든 간에 담론 분석은 개념 또는 텍스트와 ‘정치’의 상관관계에 주목함으로써 일제 식민지기의 시대상에 접근하는 데 유효한 방식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수록된 논문들은 담론 비판의 방법론이 식민지 주민들의 욕망과 실천이 계급적・민족적 나아가 제국적 차원에서 주체화되는 기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노정되는 균열과 무의식의 흔적을 추적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6부, ‘민중’의 경험과 기억 - 하위주체는 말할 수 있는가


최근 기존의 ‘민중사’를 폐기하고 하위주체(subaltern)의 역사를 ‘아래로부터’ 재구성하고자 하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하위주체란 하나의 고정된 주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이자 하층민으로서 광범한 피지배층을 가리키지만, 그 내부에는 다양한 차이와 균열이 존재하는, 그리하여 지배에 포섭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하며 때로는 지배를 자기방식으로 전유하기도 하는, 현실과 담론의 지형과 국면에 따라 끊임없이 새롭게 구성되는 존재이다. 이 ‘역사’는 지배자와 엘리트의 거대 담론에 묻혀 있던 다양한 하위주체들의 목소리를 재현하여 ‘아래로부터의 역사’를 새로이 구성하고자 한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하위주체들은 스스로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남길 수 없는 하위주체들의 역사를 재현하는 방식은 없는 것일까? 그래서 ‘기억’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기억이란 다양한 방식으로 과거가 아니라 ‘현실’을 반영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역사와 기억은 기본적으로 대립적이고 상호투쟁적인 것처럼 보인다. 객관성에 대한 근대 역사학의 믿음이 기억을 사료로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다. 기억을 둘러싼 이런 논란은 하위주체의 역사를 아래로부터 재구성한다는 과제가 짊어진 험난한 여정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그럼에도 지배와 저항의 이분법에 가려 있던 우리 역사 속의 수많은 삶이 지닌 의미를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5. 근대의 분과학문을 넘어, 새로운 인문학을 꿈꾸며


‘인문학 위기’ 담론이 제기된 지 꽤 오래 되었지만, 최근 또다시 각 대학의 인문대학 학장들에 의해 위기가 ‘선언’되었다. 이런 ‘인문대학의 위기’는 무한경쟁을 요구하는 지구화시대의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가 내뿜는 광기로부터 대학도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인문학 위기 담론이 시장경제를 위기의 주범으로 지적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광포함을 통제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배려하는 사회로 전환하는 동력을 국가에서 찾을 수는 없다. 근대국가는 언제나 자본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을 적군으로, 국가를 우군으로 상정하는 위기 담론은 그런 점에서 위기의 실체를 호도하는 수세적인 수사에 지나지 않다. 더 이상 국가에 ‘어리광’을 부리는 위기 담론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이 삶이 복잡해질수록 이를 해명하기 위한 노력, 곧 학문도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잘 알다시피, 근대 이후 인문학은 문・사・철 곧 문학・역사학・철학이라는 3대 분과학문을, 그리고 사회과학은 정치학・경제학・사회학이라는 3대 분과학문을 정립시킨 이래, 각각은 더욱 복잡한 분화를 수행해왔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3대 하위 분과학문으로의 분화는 근대의 존재양식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근대 이후 인간의 삶은 문학・역사학・철학이라는 학문분야를 통해 가장 잘 해명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왔다. 근대 이후 대학에서 이런 학문의 분화가 제도화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과 더불어 각종 응용・기술학이 각각 하나의 독립 대학으로 자리 잡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대학은 분과학문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근대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의 위기 담론은 현실의 중요한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이제 문학・역사학・철학이라는 세 분과로 분화한 인문학으로는 아무것도 해석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사회로 바뀌어버렸다. 또한 분과학문으로 구획된 대학의 제도는 지구화시대의 변화하는 사회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인문학 나아가 근대 학문 그리고 대학은 분화의 덫(혹은 분과의 덫)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복잡하게 분화된 분과학문은 오늘날의 삶과 사회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학제적 연구’나 ‘학문의 융합’이 과제로 설정되고, 그것이 인문학의 위기라는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효과적인 탈출구처럼 이야기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더욱 다양하게 분화하고 복잡하게 변화하고 있는 ‘근대적’ 인간의 삶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통합적인 사고와 학문이 필요하다.

이제 ‘새로운 인문학’이 필요한 시점이다. 새로운 인문학은 통합에서 그 시대정신을 발견한다. 통합적인 시각은 더욱 복잡하게 변화하고 있는 근대적 인간의 삶으로부터 곧 근대 비판의 정신으로부터 그 필요성이 주어진다. 오히려 인문학은, 그 본래적 의미에서, 시장경제의 광포함을 제어하고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를 만들어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고 본다. 이제 분화의 덫에 사로잡혀 사유의 본질을 상실한 인문학을 버리고 그 근원으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5. 편집위원과 필자의 구성


1) 편집위원   윤해동(책임편집위원), 허수, 천정환, 황병주, 이용기, 윤대석


2) 필자   총 28명 (가나다 순)


강인철 한신대학교 종교문화학과 교수

권명아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

권보드래 동국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김보현 성공회대학교 사회문화연구원 교수

김성례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김영미 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전임연구원

김원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교수

김준 성공회대학교 노동사연구소 교수

김현주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

류시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전문위원

양현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오성철 서울교육대학교 초등교육학과 교수

유선영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윤대석 인하대학교 BK21사업단 박사후연구원 [이 책의 편집위원]

윤해동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이 책의 편집위원]

이기훈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전문위원

이승엽 교토京都대학 인문과학연구소 조수

이용기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이 책의 편집위원]

이임하 한성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교수

이타가키 류타 도시샤同志社대학 사회학부 교수

임종명 전남대학교 사학과 교수

장석만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충간문화연구소 소장

차승기 도쿄東京외국어대학 외국인연구자

천정환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이 책의 편집위원]

한기형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허수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이 책의 편집위원]

홍종욱 도쿄東京대학 박사과정

황병주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이 책의 편집위원]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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