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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사


[특집]“학문은 ‘닫힌 결과’ 강요해선 안 돼”(주간경향 1168호)
글쓴이: 관리자
조회: 1092
등록시간: 2016-03-16 16:52:59

ㆍ‘역사파시즘’ 용어 제시한 기경량 강사, 대중 선동하는 사이비역사학 작심 비판


<역사비평> 2016년 봄호를 통해 ‘사이비 역사학’과 ‘역사 파시즘’이라는 용어를 제시한 기경량 강원대 강사는 사이비 역사학의 가장 큰 특징은 “닫힌 역사학”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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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파시즘’과 ‘사이비 역사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사이비 역사학’이라는 표현은 이번 <역사비평> 필진끼리 합의를 했다. 30대 연구자 중심으로 젊은 역사연구자 모임이 결성돼 있다. 인터넷 역사동호인 사이에서는 ‘유사 역사학’이라는 표현이 많이 사용되는데, 직관적으로 더 와닿는 표현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 사이비 역사학의 태도는 전형적인 파시즘이다. 지식인 계층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며 대중적 선동에 몰입한다. 지식인에게 학문적으로 토론을 걸지 않는다. 외국의 극우에게서도 잘 보이는 전형적 모습이다.”

특정 의견에 대해 ‘가짜 역사학’이라고 할 수 있나.
“학문의 자유가 있다는 것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지, 모든 의견들이 동일한 수준의 가치를 갖는 건 아니다. 학문세계에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치열하게 논리경쟁을 해 가장 논리적인 것들이 살아남고 논리성이 떨어지는 것은 도태된다. 이것이 학문세계의 자유경쟁이다. 낙랑군이 요서에 있다는 주장은 학문적으로 도태된 이야기다. 얘기하고 싶으면 기존 학계를 식민사학이라고 매도하지 말고 더 많은 증거를 모아 제시하면 된다.”

사이비가 아닌 진짜 역사학의 조건은 무엇인가.
“열려 있다. 학문이라는 것은 열려 있어야 한다. 결론을 정해두고 ‘닫힌 결과’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역사학계는 낙랑군이 평양에 있지 않아도 상관없다. 귀납적으로 추론한 결과가 평양설이 타당하므로 지지하는 것이다. 사이비 역사학은 ‘낙랑군은 평양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이미 내리고 출발한다.”

일부 지식인들마저 왜 사이비 역사학에 쉽게 동조할까.
“주류에 대한 반감이 원인인 것 같다. 주류는 잘못돼 있다는 생각을 하며, 주류를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는 호의를 갖고 이들의 전략에 쉽게 넘어간다.”

동북아 역사재단의 한국사 지도 제작 중단은 학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우리나라에 아직까지 제대로 된 역사지도가 나오지 못했다. 이번에 비로소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다.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다. 의견이 다른 부분도 있고 오류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최대한 합의된 결과를 담았고, 오류가 있더라도 출간이 되고 나면 이 오류에 대한 토론이 학계에서 일어나 수정될 수 있다. 이 모든 노력이 수포가 됐다.”

국회에 ‘동북아 역사왜곡특위’라는 모임까지 있다. 관심이 높다.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역사에 관심을 가지되 전문적 분야는 학계에 맡기고 지원해주는 게 가장 좋다. 연구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거기서 발생한다.”

교과서 국정화는 역사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현재 국사편찬위원장이 역사학을 전공한 분이라 사이비 역사학에 대한 인지는 충분히 하고 있을 것이다. 교과서 필진들이 학자적 양심에 따라 커트해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정치적 목적으로 시작한 국정화라 정치적 입김이 안 좋은 방향으로 미칠 수 있어 걱정된다. 1980년대 교과서 국정화 파동 때도 워낙 사이비 역사학의 입김이 커서 실제 교과서에 반영되기도 했다.”

 

고대사는 민족의 자긍심을 세우는 도구이거나 영토분쟁의 무기로 인식된다.

“모든 인문학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공부다. 내가 고대사 전공자라고 역사교육 과정에서 고대사의 비중이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마주하는 여러 문제들은 근현대의 경험만 갖고 해결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고대로부터 근현대에 있었던 모든 인간 활동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지식으로 만드는 작업들이 필요하다. 학문을 구체적 ‘필요성’에 가둬서는 안 된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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