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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창녕 고분군은 신라 유적이므로 가야유산으로 세계유산 등재는 역사왜곡이다

작성자
조성훈
작성일
2023.03.26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25
내용
지난 정부와 현 정부는 조선총독부가 창작한 역사에 근거하여 창녕이 가야라고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창녕은 신라이지 가야가 아니다.
 
첫째, 고대에서 국가의 경계는 강이나 산맥으로 이루어지는데 창녕은 낙동강 동쪽이므로 가야가 될 수 없다. 가야의 국력이 신라보다 월등했다면 강 건너의 영토를 유지할 수 있었겠지만 가야의 국력이 신라보다 크게 우월했던 적은 없다.
 
둘째, 창녕에서는 대부분 신라 유물이 출토되었다. 장상갑은 "고대 정치체의 중심묘역인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에는 경주의 신라나 낙동강 동안의 여러 지역집단과 유사한 물질자료가 확인된다. 다른 가야의 중심세력과 달리 화려한 금공품이 다수 부장되고, 토기양식론과 더불어 신라와의 관계가 강하게 인식되어 왔다"라고 하며[장상갑, 「창녕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의 계층구조」, 『가야고분군 연구총서 6권』, 248쪽.] 김태식은 "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 창녕 영산의 계성 고분군의 유물은 모두 신라 양식 권역에 해당하며, 특히 영산에서는 창녕 양식 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대가야 양식 토기는 한두 점 정도만 출토된 것이 전부"라고[김태식, 『사국시대의 가야사 연구』, 서경문화사, 2014, 185쪽.] 한다.
 
셋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창녕이 가야가 아니라 명시하고 있다. 『삼국사기』는 가야의 비사벌과 신라의 비사벌을 구분하고 있는데, 가야의 비사벌은 555년 완산주가 되었고, 565년 대야주가 되었으며, 경덕왕 시 강양군이 되었는데, 강양군은 고려시대의 합주이고 지금의 합천이다. 신라의 비사벌은 555년 하주가 되었고, 565년에는 주가 폐지되었으며, 경덕왕 시 화왕군이 되었고, 화왕군은 고려시대 이후 창녕이다.
 
[삼국사기, 진흥왕 16년(555) 봄 정월에 비사벌(比斯伐)에 완산주(完山州)를 설치하였다.]
[삼국사기, 진흥왕 26년(565) 9월에 완산주(完山州)를 폐하고, 대야주(大耶州)를​ 설치하였다.]
[삼국사기, 잡지, 강양군(江陽郡)은 본래 대량주군(大良 한편 야(耶)라고도 쓴다.州郡)인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합주(陜州)이다.]
[삼국사기, 잡지, 화왕군(火王郡)은 본래 비자화군(比自火郡) 한편 비사벌(比斯伐)이라고도 이른다. 진흥왕(眞興王) 16년(555)에 주를 두고 하주(下州)로 이름하였다. 진흥왕(眞興王) 26년(565) 주를 폐했다.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창녕군(昌寧郡)이다.]
 
『삼국유사』는 "비화가야가 지금의 창녕이란 것은 아마도 고령의 잘못인 것 같다"라고 한다. 일연은 비화가야를 고령으로 추측하는데, 이는 왕권이 김해에서 고령으로 넘어간 것을 모르고 고령을 여전히 가야의 한 지방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떻든 일연도 창녕이 가야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하고 있다.
 
창녕이 가야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고분이 구릉지 능선을 따라 위치하고, 그들이 말하는 가야식의 토기가 나오는 곳은 모두 가야라고 주장한다. 한반도 남부는 고분이나 토기가 비슷했다. 백제 신라 가야 모두 지배층은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다. 지배층이 변한다고 토착문화가 쉽게 변하지는 않는다. 백제가 지배한 남원은 백제이고, 가야가 지배한 합천은 가야이고, 신라가 지배한 창녕은 신라이다. 그들의 주장은 맥도날드가 있는 곳은 전부 미국이라는 주장과 같은 어리석은 주장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는 108년 비지국(比只國)을 병합하였는데, 비지국의 비지와 비사벌의 비사는 표기의 차이에 불과한 것이므로, 신라가 창녕을 108년에 편입한 것으로 보인다. 천관우도 비지국을 창녕으로 비정한다.[千寬宇, 『古朝鮮史·三韓史硏究』, 一潮閣, 1989. 293쪽.] 가야와 신라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였다. 우리나라 도처에 옥녀봉 까치고개 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사벌이라는 지명을 가야 신라 모두 사용하였으므로 가야의 비사벌은 합천이고 신라의 비사벌은 창녕이라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창녕을 가야라 주장하는 이들은 조선총독부가 창작한 임나일본부설에 근거하고 있다. 조선총독부는 임나의 영역을 넓혀 가공의 야마토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한 영역이 크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어떠한 근거도 없이, 오직 음상사에 의해서만, 일본서기 임나의 지명을 한반도 남부 도처에 배치시키고 있다. 그들은 낙동강 동쪽도 임나라 주장하여 야마토왜의 지배범위를 넓히려 창녕은 가야라 거짓말하고 있다.
 
합천은 비화가야(비사벌가야)이고 다라국이 아니며, 창녕은 신라의 비사벌이므로, 창녕을 비화가야로, 합천을 다라국으로 세계유산 등재 신청하는 것에 찬성하는 것은 경남인들의 조상이 야마토왜의 식민지에 살았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세계유산 등재가 시간을 다투어야 할 시급한 일은 아니므로 창녕이 가야였는지 신라였는지 충분하게 검토한 후에 올바른 나라의 유적으로 등재신청 하여도 잃을 것은 전혀 없다. 세계유산 추진하는 사람들의 신중한 판단를 부탁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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